부산행, 신세계, 악녀 등 이름만 대도 다 알 법한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한 프로파간다 최지웅 디자이너는 30년째 88 서울올림픽과 호돌이에 푹 빠져있는 한 사람이다. 올림픽이 너무 좋아 열세 살 때부터 수집품을 꾸준히 모았고, 서울올림픽 30주년을 앞두고 올해 12월엔 <88 서울>이라는 책 발간까지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코카-콜라 성화봉송 주자로도 선정됐다. 올림픽 현장의 한가운데서 짜릿한 열정을 전해줄 최지웅 디자이너를 직접 만났다.

 

Q. 스스로를 ‘서울올림픽 덕후’라고 칭할 만큼, 88 서울올림픽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데요.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그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올림픽에 대한 모든 것이 새로웠고, 좋았어요. 1988년 당시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국제적인 대회가 열린 게 처음이었거든요. 수집품을 하나씩 보다 보면, 전 국민이 열광했던 그때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특히 올림픽 엠블럼, 마스코트 호돌이는 정말이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예쁘고요.

 

Q. 그때부터 수집을 시작했으니, 양이 상당하겠어요.

어렸을 땐 우표, 배지, 엽서, 신문 등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집을 했어요. (웃음) 커서는 좀 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수집을 했고요. 유명 벼룩시장을 비롯해 외국 사이트를 밤새 뒤진 적도 있고, 경매에도 참여해 서울올림픽 관련 물건들을 꾸준히 모았습니다. 손품, 발품 안 판 게 없죠. 그렇게 모은 게 어느덧 수백 점이 됐어요.

 

Q. 가장 애착이 가는 수집품이 있다면?

제가 만든 스크랩북에 애착이 많이 가요.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보도된 기사들을 일일이 자르고 붙여 만든 책인데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온갖 신문이란 신문은 다 구해와서 스크랩북을 만들었어요. 재미있는 건 ‘아, 내가 이때부터 디자인에 정말 관심이 많았구나.’ 싶을 만큼 전체 페이지 구성을 기획해가면서 만들었다는 거예요. 한 번 보실래요?

입이 쩍~ 벌어지는 1988 서울올림픽 스크랩북!

 

 

Q. 가장 기억에 남는 서울올림픽 장면은?

제 고향이 강원도 원주인데, 당시 집 근처에서 성화봉송 릴레이가 있었어요. 정말 너무 많이 기대를 해서 그런지 전날 밤엔 제대로 잠도 못 잤어요. 성화봉송 주자들이 원주에 도착했을 땐, 깃발까지 흔들며 응원하러 나갔죠. 그때 썼던 일기와 성화봉송 주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흔들었던 깃발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어요. 깃발은 길거리에서 제가 직접 흔들던 건데 사람들이 잘 안 믿더라고요. 진짠데. (웃음) 

성화봉송에 얽힌 추억 


Q. 
88 서울올림픽 때 깃발을 들고 성화봉송 주자를 응원하며 부러워하던 한 소년이, 30년 뒤 평창올림픽에서는 성화봉송 주자로 ‘주인공’이 되어 뛰게 됐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처음에 코카-콜라에서 성화봉송 주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SNS에서 보고, 엄청 흥분했어요. ‘이건 내가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싶었죠. 그래서 응모를 했는데, 진짜로 이렇게 기회가 올 줄 몰랐어요. 주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너무 기뻐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당일에는 청심환이라도 먹고 뛰려고요. (웃음) 제 일생일대 최고의 짜릿한 경험이 될 텐데, 어떻게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가족들이랑 친구들도 와서 응원해주기로 했어요. 

 

Q. 올해 12월에 선보일 <88 서울>이라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2018년은 여러모로 저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해에요. 서울올림픽 30주년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동계올림픽인 평창올림픽이 열리고, 저희 회사도 창립 10주년을 맞아요. 그래서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게 서울올림픽 아카이빙 북을 만드는 거였어요. 올해 초부터 SNS를 통해서 서울올림픽 관련 사진을 공모했는데, 지금까지 100여 점 정도 받았어요. 보내주신 소중한 사진들과 제가 모은 수집품들을 화보처럼 소개하는 책, <88 서울>을 12월에 있을 ‘언리미티드 에디션 9 – 서울아트북페어 2017’에서 공개할 예정이에요. 얼마 전 별세하신 88 서울올림픽 엠블럼 디자이너 양승춘 선생님의 자제분께 받은 자료와 제가 직접 찾아뵙고 인터뷰를 하고 온 호돌이 디자이너 김현 선생님의 이야기도 실을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Q. 어떤 사연들이 들어오고 있는지 살~짝 선공개가 가능한가요? 

본인이 직접 쓴, 호돌이가 그려진 일기장을 보내주시는 분도 있고, 군수였던 할아버지가 호돌이와 같이 찍은 사진 등 다양한 분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담아 보내주셨어요. 반대로 제가 직접 검색해서 찾은 분들도 있어요. 1988년에 서울에 왔던 해외 저널리스트 분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고, 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흔쾌히 사진 사용을 허락해주시면서, 사진에 얽힌 사연까지 적어서 보내주셨어요. 올림픽으로 하나 되는 열정, 신기하지 않아요?

<서울88> 엿보기



Q.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주고, 참여해주니까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수집을 한다는 건 우선 자기만족이지만, 그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할 때 느끼는 기쁨도 커요. 특히 <88 서울> 프로젝트는 ‘모두의 추억’을 수집하는 일이잖아요. 잠시 잊혔던 기억을 다시 꺼내놓고, 그 추억을 함께 곱씹으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Q. 올림픽에 대한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수집을 하고, 책으로 내고 계시죠? 

어렸을 때부터 수집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많이 모아왔어요. 1970~1980년대 동네 문방구에서 판매하던 딱지를 수집해서 만든 ‘딱지 도감’이라는 책도 있고, 1950~1960년대 국내에서 개봉한 외국 영화의 광고 선전물을 모은 <영화 선전 도감>이라는 책도 있어요. 특히 영화 포스터는 13살 때부터 모아왔는데, 올림픽 수집품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제 직업과 연관이 있어서 그렇겠죠.

 

Q.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국내의 수많은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계시잖아요. 그 과정이 어떤지도 궁금해요. 

보통 영화 포스터 디자인이라고 하면 영화사에서 사진을 받아 디자인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아요.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시나리오 북을 만드는 일인데요. 내지 편집 디자인, 표지 디자인 등을 해서 완전한 시나리오 북이 나오고 나면, 그때부터 영화 촬영을 시작해요. 영화 포스터도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난 뒤에 후반부에 하는 일이 아니라, 촬영 중간부터 만들기 시작해요. 그래서 저희도 시나리오를 읽고 분석하면서 영화 포스터 아이디어를 생각하죠. 직접 원하는 사진을 연출해서 찍는 경우도 많아요. 기획 단계부터 영화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하면서 만들어가는 일이 바로 영화 포스터 디자인이에요. 포스터뿐만 아니라 전단, 각종 지면이나 옥외 광고, 프로모션 굿즈 등 영화 비주얼이 보이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한다고 보시면 돼요.

최지웅 디자이너의 작품들 ⓒ프로파간다
 

Q. 수집 활동이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기도 하나요?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오르는 날이면 오래된 것들을 펼쳐보며 영감을 얻어요. 아카이빙은 하나의 잘 정리된 ‘자료’이기도 하잖아요. 옛날에 좋았던 영화 포스터 작품들을 보면서 리프레시도 하고, 아이디어를 얻어요. 올림픽 관련 수집은 ‘일’이 아닌, 취미 활동으로 하는 건데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에요. 

 

Q. 어쨌든 수집을 빼놓고는 최지웅 디자이너님의 인생을 논할 수가 없는데요. (웃음)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와는 꽤 거리가 먼 삶인 것 같아요.

네, 저와는 거리가 굉장히 먼 삶이에요. (웃음) 우표, 동전, 신문, 수첩… 누군가에게는 아무 가치 없는 것일지 몰라도 저에겐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자 기억하고 싶은 것, 어쩌면 모든 것이기도 해요. 앞으로도 미니멀리스트가 될 생각은 없어요.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모을 거예요. 영화도, 올림픽도. 

 

Q. 수집을 하면 어떤 게 가장 좋으세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럴까요? (웃음) 이유 없이 그냥 좋아요. 그냥. 

 

Q.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한 마디!

1988 서울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하계올림픽이었다면, 2018 평창올림픽은 우리나라 최초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잖아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기회를 최대한 즐기시고,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이 좋은 추억 하나씩 남기셨으면 좋겠어요. 10년, 20년, 30년이 지난 뒤 다시 꺼내봐도 좋은, 그런 추억이요. 저 또한 성화봉송 주자로서 열심히 뛰겠습니다!

 

올림픽은 짧아도, 올림픽의 추억은 길다. 30년 전 성화봉송 주자를 보며 부러움의 눈빛을 보내던 소년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성화봉송 주자로서 어떤 눈빛으로 사람들에게 열정을 전해줄지, 또 어떤 추억들을 수집해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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