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란 말이 흔해진 요즘이지만, 진짜 ‘도전’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닐지. 2011년 5월, 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46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신영록 전 축구선수에게 ‘성화봉송’ 은 인생을 건 도전이라 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가뿐하게 뛸 수 있는 200m라는 성화봉송 구간이 신영록 선수에게는 2km 이상의 거리를 전속력으로 뛰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신영록 선수가 성화봉송에 나서게 된 것은 차두리 축구대표팀 코치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차두리 코치는 “코카-콜라에서 ‘함께 뛰는 그룹 성화봉송 주자’를 제안해왔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영록이었다. 축구 감독이라는 제2의 꿈을 안고 열심히 재활하고 있는 영록이에게 힘을 주고 싶어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실제 코카-콜라는 각계각층 유명인사로 구성된 ‘드림멘토’와 미래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그룹 성화봉송 주자로 선정해 그들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제안을 받자마자 신영록 선수가 제일 먼저 한 말은 “할게. 무조건 해야지.”였다. 하지만 성화봉송 당일 아침까지도 어머니 전은수 씨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정상적인 움직임이 버거운 상태였기 때문.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조직위원회 측에 휠체어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휠체어는 끝내 필요 없었다. 신영록 선수의 성화봉송은 느렸지만 뚜벅뚜벅 흔들림이 없었고, 꿋꿋했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힘차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그의 모습은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평소엔 누구보다 빠르지만 이날만큼은 후배 신영록의 손을 꼭 붙잡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함께 보조를 맞춘 차두리 코치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거 신영록 선수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축구선수 ‘디디에 드록바’를 연상케 하는 저돌적인 플레이로 ‘영록바’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난 뒤, 의학적인 소생 가능성 0.3%의 불가능을 딛고 일어났을 땐 ‘기적의 사나이’로 불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부산 시민들은 신영록 선수의 발걸음에 눈시울을 붉히면서 “신영록 힘내라!” “대단하다!” “조금만 더!”를 외치며 힘을 보탰다.

마침내 200m를 완주했을 때, 거리 곳곳에선 박수 소리와 함께 짜릿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성화봉송 내내 시민들 틈에 섞여 함께 뛰던 어머니 전은수 씨도 꾹꾹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영록이가 성화봉송을 한다고 했을 때 잘 뛸 수 있을지 걱정반 기대반이었는데, 완주해서 너무 기쁘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 신덕현 씨 또한 “우리 영록이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영록이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것 같다.”며 가슴 먹먹한 소감을 전했다. 그렇게 이날의 성화봉송은 한 사람의 인생에, 한 가족에게, 그걸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한 번도 안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단지 느릴 뿐,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다 보면,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신영록

꿈을 향한 신영록 선수의 ‘희망의 여정’은 오늘도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