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식 전날 대형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절망에 빠졌던 한 남자는 12년 후 모든 운동선수들의 꿈인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하나씩 목에 건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9일 동안 63.93km 거리의 설원을 두 팔로 달리며 ‘철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신의현 선수가 그 주인공. 특히 동계패럴림픽에서의 금메달은 우리나라의 사상 첫 금메달이었던 만큼 그 의미도 더 컸다. 도전하며 한 단계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는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패럴림픽 이후에도 쏟아지는 출연 요청으로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의현 선수를 제23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 현장에서 만났다.

 

Q.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금메달, 동메달에 이어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장애인선수상까지! 정말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얼떨떨하네요. 믿어지지도 않고요. TV에서 보면서 동경하던 선수들과 함께 상을 받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에 금메달 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Q. 너무 겸손한 대답 아닌가요? (웃음) 신의현 선수 또한 올림픽이 낳은 스타이자, 많은 분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아니에요. 하하. 제가 해낸 거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Q.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시상식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그 순간, 많이 울컥하신 모습이었어요. 국민들도 그 모습을 보면서 같이 울컥했어요.

경기 전에 제가 여러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따서 시상식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막상 약속을 못 지키게 될까봐 경기 전날엔 잠이 안 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경기 당일엔 정말 죽기 살기로 뛰었습니다. 국민들과의 약속이자,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시상식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땐 드디어 해냈다는 감동과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감이 뒤섞여서 많이 울컥했던 것 같아요.

 

Q. 어느 정도 메달 자신감은 있지 않으셨나요?

세계선수권대회나 월드컵 등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땄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어요. 그런데 바이애슬론 경기에서 사격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올림픽 초보에겐 쉽지 않은 길이구나.’ 하면서 자책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도 남아있는 다른 경기에 영향을 안 주려고, 빨리 털어내려고 노력했죠. 마지막엔 그냥 ‘앞만 보고 달리자. 죽어도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주했는데, 결승선까지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뛰었습니다.(웃음) 자신감보단 절박함이 만든 메달이에요.

▲ 금메달, 동메달을 쳐다보며 뿌듯해하는 신의현 선수

 

Q. 이번 올림픽에서 총 7종목, 63.93km의 거리를 두 팔로 달리셨습니다. 체력적인 부담이 있었을 텐데, 그렇게 많은 종목에 출전한 이유가 있다면?

우선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이라는 종목에 대해 국민들께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또, 장애인 스포츠는 비장애인 스포츠에 비해 덜 힘들고 박진감도 덜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그래서 훈련을 많이 할 때는 하루 5~6시간, 50~60km를 타면서 충분한 체력을 키웠습니다.

 

Q. 거기서 보여준 ‘철인’ 이미지 덕분에 많은 분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아이언맨은 윤성빈, 패럴림픽의 아이언맨은 신의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알고 계셨나요?

정말요? 잘 몰랐어요.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저야 감사하죠. 더 나은 아이언맨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웃음)

 

Q. 이번 금메달과 동메달은 스키 입문 3년 만에 얻어낸 쾌거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금메달은 패럴림픽 역사상 국내 최초였죠. 불모지에서 어떻게 이런 성과가 가능했을까요?

좌식 스키는 국내 기반이 잘 닦여있지 않았어요. 전문가도, 연구 자료도 선진국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했죠. 그래서 외국 선수들은 어떻게 타는지, 또 스키는 어떻게 만드는지 많이 연구하고 찾아봤어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직접 사진도 찍고, 좋은 기술은 따라 해보고, 제 방식대로 바꿔보고, 더 발전시켜보면서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갔어요.

 

Q. 훈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셨나요?

다양한 훈련 방법이 있어요. 눈이 오지 않는 여름엔 스키 바닥에 롤러를 달고 대관령을 넘었죠. 어렸을 때 부모님 농사를 도운 것도 큰 몫을 했어요. 어머니가 칡 1kg을 뽑아오면 500원을 주셨는데, 그 돈을 얻어보겠다고 괭이질, 삽질하면서 엄청나게 칡을 뽑아댔죠. 하하. 그러다 보니 당기는 힘이 좋아졌고, 40kg 정도 하는 밤 포대를 들고 나르면서 허릿심도 좋아졌어요. 이런 걸… 조기교육의 중요성이라고 하나요?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일동 웃음)

▲ 포기를 모르는 도전 정신과 철저한 연구, 끝없는 시도까지.. 신의현 선수의 값진 결과물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Q. 휠체어 농구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스포츠 종목들도 섭렵해오셨는데요.

맞아요. 두 다리를 잃고 난 뒤 휠체어 농구부터 시작해서 장애인 아이스하키, 핸드사이클 등 다양한 스포츠에 도전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경험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된 것 같아요. 각 종목에서 얻은 여러 가지 노하우를 접목시켜서 훈련한 게 시너지를 일으켰으니까요.

 

Q. 제일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물론 힘든 것도 있었지만 재미가 더 컸어요.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에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운동하는 게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힐링도 많이 됐고요. 특히 운동하는 사람들은 활력이 넘치고, 긍정적인 부분들이 있는데요. 삶에 대한 의지가 많이 꺾여있던 시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건강하게 운동도 하면서 제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더 잘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삶의 목표도 생겼죠.

 

Q. 그게 올림픽이었나요?

맞아요. 운동 선수들의 ‘꿈의 무대’가 올림픽이잖아요. 국가대표로 나가서 태극기도 흔들고, 메달도 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죽다가 살아났는데, 앞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 "운동이 제 삶을 변화시켰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자신감이 묻어났다.

 

Q. 그래도 절망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많이 나요. 제가 장애인이 됐을 때, 처음에는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하고, 하루하루 목표 없이 그저 술만 마셨어요. 그런 저를 보면서 어머니도 참 안타까워하시고 마음고생도 많이 하셨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건강하던 아들이 사고가 난 뒤에 폐인처럼 살면 부모 입장에선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운동도 하고, 결혼도 했어요.

 

Q. 아이들도 아빠를 많이 자랑스러워하죠?

그런 것 같아요. 친구들이 사인을 받아달라고 해서 몇 번 해준 적도 있어요. 다른 어떤 사인보다 가장 기분 좋은 사인이었어요. 아내가 베트남 사람이고, 저는 장애인이다 보니 아이들이 혹시나 학교에서 주눅 들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 보면서 아이들도 자랑스러워하니까,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신의현 선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내 김희선 씨는 많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Q. 이 자리를 빌려, 가족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받을 때마다 쑥스럽네요. (웃음) 무엇보다 저는 항상 열심히 하는 아들, 다정하고 좋은 남편,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남은 인생도 함께 웃으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Q.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오셨는데, 휴가 계획이 있으신가요?

경기가 끝나고 아무 생각 없이 며칠 푹 쉬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사실 못 쉬고 있어요. 친구들과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며칠 동안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주정뱅이가 되고 싶어요.(웃음) 안주로는 아내가 만들어준 육회가 먹고 싶고.

 

Q. 아내분께서 요리를 잘 하시나 봐요.

아내가 요리를 잘 해요. 저와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한식과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딸만큼 내조를 잘해줬어요. 금메달은 아내 덕분이기도 해요.

(이날, 신의현 선수는 제23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에서도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시상대에 올랐다. 그리고 수상의 영광을 아내에게 돌리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 '다정한 스킨십'을 요청하자 부인 김희선 씨는 "남편은 수줍음이 많으니 내가 하겠다"라며 나섰다. 신의현 선수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Q.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바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유심히 쳐다본다던가 불쌍하다는 눈빛은 보내지 말았으면 해요. 똑같은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반대로, 장애인분들도 조금 더 웃으면서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웃으면 복이 온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되도록 많이 웃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지금 어딘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은 좌절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저도 좌절을 겪었고, 그걸 이겨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요.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신 분들도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꼭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 거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무엇이든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Q. 2020 도쿄올림픽에도 나가겠다고 도전장을 내미셨는데요.

2020년에 열리는 도쿄 패럴림픽에서 핸드사이클 종목에 출전해서 메달을 따는 것이 다음 목표에요. 꽤 예전부터 꿈꿔오던 것이라서 꼭 이루고 싶어요. 또, 이번에 바이애슬론 종목에서 사격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는데요. 친구들이 장난으로 ‘특공대 출신이 총도 못 쏘냐’고 혼을 내더라고요. (웃음) 2022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명예 회복을 하고 싶어요.

 

Q. 신의현 선수에게 ‘도전’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점점 발전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솔직히 끊임없이 나아질 순 없겠지만. 하하) 저에게 도전은 곧 행복이에요.

▲ 신의현 선수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힘든 훈련 과정 끝에 값진 결과를 얻어낸지 겨우 몇 주가 지났다. 쉬고 싶을 법도 한데 다음 목표를 말하며 웃는 신의현 선수를 보며 ‘도전은 곧 행복’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의현 선수의 끝없는 도전을 응원하며, 2년 뒤 도쿄에서 만날 그를 기다려본다. 그때까지 필! 승!